생각 나부랭이 - 13건
- 2007/02/06 여행과 현실
- 2006/12/30 자신감에 대하여 (4)
- 2006/08/29 블로그 분류에 관한 짧은 생각 (4)
- 2006/08/20 능동적 취미생활과 수동적 취미생활 (2)
- 2006/08/10 타인의 재능 (4)
- 2006/08/08 그럴 것 같다?
- 2006/07/04 Carpe Diem..?
- 2006/06/29 나로서 감상하기
- 2006/06/23 징크스 (2)
- 2006/06/14 거짓 세상
여행에의 동경
. 먼 남쪽 나라의 푸르고 투명한 바다와 하얀 모래사장
. 수평선 너머로 기울어가는 태양을 바라보는 배위의 낭만
. 새하얀 설경 속 눈밭 위로 한발 한발 내딛는 여유로움
. 소금기 있는 바닷 바람을 맞으며 힘차게 달리는 자전거 하이킹
. 산 정상에서 맡는 상쾌한 공기와 청명한 햇살
. 새로운 세상에서의 나와 다른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
여행속의 현실
. 강하게 내리쬐는 햇볕에 그을리고 벗겨지는 피부의 따가움
. 흔들리는 배위에서의 어지러움과 구토증
. 시린 손과 발. 젖어서 눅눅해진 양말과 간지러운 발바닥
. 고문받듯 땡기는 허벅지 근육과 자전거 의자에 앉을 수조차 없는 X문의 통증
. 까진 뒤꿈치와 결코 유쾌하지 않은 내 몸에서 나는 체취
. 말이 통하지 않는 답답함. 나중에야 깨닫는 바가지. 두어달 전에 들은 중국 장기매매 사건
실제 여행은 평소에 생각하는 여행과 다르다. 거기엔 우리가 일상적으로 품는 아름다운 상상도 있지만 실생활의 구질구질함도 있다. 아름다운 상상으로 떠나는 여행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부푼 가슴으로 돈까지 들여가며 떠난 여행이지만 돌아오는 길에서는 피곤에 절어 손을 훠이훠이 내두르는 것이 꼭 잘못되거나 비정상적인 일만은 아니란 얘기다.
영화에선 남자 주인공이 사랑하는 여자와 깊은 밤까지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으로 한 씬이 끝나지만, 막차 시간과 차가 끊긴 후의 내일 일에 대한 걱정, 수면을 충분히 취하라는 담당의사의 충고를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행에 대한 상상과 영화속의 인생은 이상이다. 현실과는 다른...
항상 좋은 것을 바라고 즐거운 것만을 바라는게 사람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기에 삶의 괴리가 발생한다. 다른 사람이 보기에 즐거울 것만 같은 나의 삶도 내가 생각하는 '얻지 못한 무언가'가 있기에 결코 완전하게 즐겁진 않다. 다른 사람 미니홈피에 가서 그 사람의 생활을 엿보고 부러워하는 것은 대개 쓰잘데기 없는 짓이다. 홈피에는 보통 주인이 선별한 '아름다운' 혹은 '이상적인' 모습들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 모두는 이렇게 부족함을 느끼고 살아간다. 문제는 이렇게 완전하지 못한, 비어있는(空) 인생에서 얼마만큼 스스로 만족을 느끼느냐이다. 아니, 만족을 '생각하고 만들어가느냐' 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감'에 대한 얘기들을 한다. "자신감을 가져라"라느니, "자신감만 있으면 못할 것이 없다"라느니, "남자는 자신감"이라는 등등. 그만큼 살아가는데 자신감이 중요하다는 얘기일 것이고, 지금까지 내 경험을 비추어 보았을 때도 '자신감'이라는 것은 보다 나은, 혹은 즐거운 인생을 살아가는데 매우 중요한 것임에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살다보면 주변에서 흔히 "자신감을 가져. 넌 잘 할 수 있어"라며 친구를 위로해주는 '일상적인' 말을 하곤 한다. 그런데 나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볼 때면 이런 생각이 든다. 과연 저런 말을 듣는다고 해서 진짜 자신감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 하는 생각이.
자신감이란 무엇인가?
굳이 한자어로 풀어서 보자면 '自'(스스로 자), '信'(믿을 신), '感'(느낄 감). 즉 '스스로를 믿는 느낌'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사전에 나오는 '자신이 있다고 여겨지는 느낌'과는 약간 다른 해석일 수도 있겠으나 사실과 더 잘 맞는건 앞의 해석이라고 생각한다.)
자신감을 갖는다는 것은 말 그대로 '나 자신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럼 나 자신에 대한 믿음은 어떻게 생기는 것인가? 위에서 얘기한 것 처럼 친구가 "자신감을 가져!"라고 말해주는 것을 들으면?
비종교인이 명동 길가를 걷다가 "예수 믿는 사람은 천당에 가고, 안 믿으면 지옥에 갑니다. 여러분 예수를 믿으십시오!"라고 확성기에 대고 떠들어 대는 아저씨를 보고 단번에 종교인으로 바뀌는 경우가 얼마나 있을까? 모르긴 몰라도 100명 중에서 100명 쯤은 생각이 조금도 바뀌지 않을 것 같다. 그럼 왜 생각이 바뀌지 않는 것일까? 지옥에 간다는 그 무시무시한 말을 들었는데도? 그건 바로 이 시끄러운 아저씨의 말에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를 안 믿으면 이러이러해서 저러저러하므로 요러요러한 이유 때문에 지옥에 갑니다.' 라고 굳이 얘기를 해준다면 생각이 바뀔 여지가 조금이라도 생기겠지만 앞뒤말도 없이 다짜고짜 예수 안믿으면 지옥에 간다고 하니 누가 그 말을 믿겠는가? 이건 '이 글을 보고 다른 10곳에 같은 글을 올리지 않으면 당신 컴퓨터가 놀라 자빠집니다'라고 하는, 인터넷에 돌아다니면서 흔히 보는 말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말이다(물론 이런 말을 믿고 다른 열 군데에 같은 글을 올리는 초등학생 혹은 철없는 나이든 이들도 있긴 하지만).
친구가 "자신감을 가져!"라고 말해주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나마 여기에는 친구를 위하는, 친구를 격려하는 따뜻한 마음이 있을지언정, 그 말 자체만 놓고 본다면 아저씨가 하는 말과, 또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말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 말은 전혀 근거가 없으며 그냥 '다 잘될거야'라고 하는 'EWBF교(Everything Will Be Fine 敎)'의 제1잠언에 근거한 미신에 불과하다.
그러면 내 인생에 커다란 도움을 주게 될 '자신감'이라는 놈을 가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위에 쓴 얘기들로 인해 대략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지만, 자신감을 갖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나의 자신감에 대한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감이라는 것이 말은 쉽지만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냥 '자신감을 가져야지, 가져야지, 난 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져야지..' 라고 일백번 되뇌인다고 해서 자신감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내가 나를 믿을 수 있을만한 나에 대한 근거를 많이 만들어 놓은 사람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즉, 그런 사람만이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된다.
피아노 연주에 대한 자신감을 가지려면 피아노 연습을 많이 한 상태여야 하고, 시험을 잘 볼 자신감을 가지려면 시험 보는 부분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 놓은 상태여야 한다. 여기서 연습과 공부는 자신감에 대한 근거가 되고, 그것들로 인해 비로소 나에게 '자신감'이라는 감정이 생기는 것이다. 평소에는 별 근거도 안 만들어놓고 있다가 막상 뭘 해야할 때가 와서, "자신감이 최고야, 나에겐 자신감이 있어!" 라고 아무리 생각해봤자 진정한 자신감은 생기지 않는단 얘기다. 자신감에 대한 근거가 없으므로.
자신감은 평소의 꾸준한 노력에 의해서 생기는 '과정이 필요한 감정'이지, 길 가는 예쁜 여자를 보고 생기는 호감과 같은 '단번에 생기는 감정'이 아니다. 자신감 있는 인생, 즉 보다 세상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다면 그에 대한 근거를 꾸준히 만들어야 한다. 노력한 자에게 보답을 준다고 하는 '자신감'이라는 녀석은 그런 근거를 묵묵히 만들어가는 사람에게 손을 뿌리치는 행동 같은건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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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2007/01/03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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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자신에 대한 근거를 많이 만들어 놓는 사람만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는 말에 큰 공감을 얻네요^^
정말 사회생활을 하면서, 제가 하고 있는 작업이 옳은 작업인지 틀렸는지에 대해 판단력이 없다보니 자신감도 함께 없던거 같은데.. 점점 경력을 쌓으면서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나오는 경험에서 오는 근거가 자신감이 되어서 밀어붙이는 경우도 생기는 듯하니깐요^^
좋은글 잘 읽고 갑니다^^ -
SINI112 2007/03/13 0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제가 그동안 자신감없이 살아왔던 이유를 이글에서 찾을 수 있었습니다. 노력도 하지않으면서 계속 자신감을 가져야 겠다고 생각해왔었네요. 지금도 그런면으로 속상해서 펑펑울어버리고서 이 글을 보게 되었어요. ㅋ 이제는 부단히 노력해서 저를 믿는 마음을 키워나가려고합니다.
나 자신에 대한 근거를 많이 만들어 놓는 사람만이 자신감을 가질수 있다. 란 말,, 맘속에 품고 열심히 살아야겠어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블로그 분류에 관한 짧은 생각
아리스토텔레스가 자연을 분류하기 시작한 이래로, 인류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분류하며 살아왔다. 이 세계에 존재하는 것들을 무생물과 생물로 분류하고, 생물을 동물과 식물로 분류하고, 동물을 척추동물, 환형동물, 절지동물 등등으로 분류하고..... 그리고 분류는 알게 모르게 우리 인류의 습성이 되어버렸다.
나도 이러한 습성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많은 분류들을 하였고, 그 중 하나가 이 블로그의 분류(category)이다. 처음 블로그를 만들 때 생각에 따라서 (그 후에도 바뀌긴 했지만) 나름의 분류를 세워놓았고 그 분류에 따라서 이런저런 글들을 올려왔다. 대체로 무난했고, 그리 큰 문제도 없는 듯 보였다.
하지만 예전부터 약간 마음속 깊은 곳에서 보일듯 말듯 찜찜했던 것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으니, 이 분류체계에서 커다란 단점을 발견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단점이란 바로
"분류가 사고와 글을 속박한다"
는 것이다.
보통 블로그에 글을 올릴 때는 그 분류에 맞는 글을 올리게 마련이다. 때에 따라서는 내가 정한 분류에 딱 맞아 떨어지는 글들이 쓰여질 때가 있고, 그런 경우는 고민할 필요가 없다. 마음 속에 아무런 찜찜함도 생기지 않고, 마치 화장실에서 일을 보고 뒷처리가 깔끔하게(?) 끝난 듯이 기분 자체가 말끔하다. (이미 만들어진)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최상의 경우라 하겠다(글이 마음에 들게 써졌을 경우에 한해서지만).
하지만 거미가 곤충이 아니라는 사실처럼 내 생각 전부가 그 미리 정한 카테고리 안에 레고블럭 맞추듯 딱 맞게 들어맞을 수는 없는 법. 집에서 또 밖에서 생활을 하면서 '글감'으로 떠오르는 생각들이 수도없이 많지만, 또 그것들을 글로 써보고 싶지만, 그것에 맞는 적합한 분류를 만들어 놓지 않아서 글 쓰는 것 자체를 포기할 때가 많다. 하루, 이틀이 지나면 그 생각들은 날아가버리고 그것들이 유일하게 존재했던 내 머리속에서 사라졌으니 - 사라지진 않았다고 하더라도 내 의식에 잡히질 않으니 - 그것들은 이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이다. 내가 그 생각을 해냈던 시간은 철저하게 낭비된 것과 다름이 없으며, 젊은 날 한순간의 열정처럼 그 사고 자체도 그렇게 사라져버리고 만다.
그럼 분류를 새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 하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분류를 무작정 늘릴 수는 없는 것이고, 항상 그렇듯 분류가 늘어날수록 다른 것과 겹치는 부분이 많아지니 때에 따라서는 지금껏 세워놓은 분류체계 전체를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까지 발생할 수도 있는 이유로 분류를 새로 만드는 것은 최대한 자제하는 편이다. 물론 관리자의 게으름이 가장 큰 원인이긴 하지만...
따라서 이런 이유들로, 오늘 블로그 분류체계를 대폭 감축시켰다. '호모 사피엔스'와 '호모 아르텍스'의 하위 분류를 모두 없애고 그냥 상위 분류만 남겨놓았다. 아예 분류를 모두 없앨까 생각도 했었지만, 거기에는 또다른 반대 극단의 경우인 혼란만이 생겨날 것이란 판단하에 시도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결국 지금의 내 블로그는 7개의 분류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이대로 계속 유지할 생각이다. (물론 사람 마음이란게 알 수 없는 것이므로 내일 당장 20개 이상으로 분류가 늘어날 수도 있고, 분류 자체가 없어져버릴 수도 있긴 하다)
무언가를 떼어내 버린 셈이지만, 마음은 한결 더 가득 찬 느낌이 든다. 채우기 위해선 우선 비워야 한다고 노자가 말했던가. 무언가를 비워버림으로써 사고의 폭이 더 넓어지는 것은 결코 잃는 것은 아닐 것이다.
혹시라도 이 블로그에 들르시는 블로거들 중 필요없는 분류들로 인해 고통아닌 고통을 받고 계신 분은 자신의 분류를 한 번 바꿔보는 것은 어떨는지. 훨씬 큰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
능동적 취미생활과 수동적 취미생활
분류라는 것이 기준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나뉘는 것이고, 내가 지금 여기에 쓰고자 하는 것도 분류에 관한 것이라 한다면, 이러한 명제가 성립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기준에 의하면) 취미 생활은 크게 두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한 가지는 능동적 취미생활이고, 다른 한 가지는 수동적 취미생활이다."
여기서 '능동적 취미생활'이란 것은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 취미생활을 말하고, '수동적 취미생활'이란 것은 별다른 노력이 없어도 단지 받아들임으로써 즐길 수 있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일상 언어로 표현하는 수많은 것들이 그렇듯이 "1은 양수이고 -1은 음수이다"라는 수학적 명제처럼 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구분이 모호하거나 두 가지의 성질이 모두 혼합된 것들이 있을테지만, 이것은 언어의 한계라는 핑계로 그냥 무책임하게 얼버무려 버리기로 하겠다.
각설하고, 저 위의 분류는 내 마음대로 정한 것이므로 처음 보는 사람은 위의 정의만 가지고는 무슨 말인지 알지 못할 수도 있을테니 우선은 예를 들어보아야 할 것 같다.
능동적인, 즉 노력이 필요한 취미생활은 내가 그 취미를 즐기기 위해 (신경을 써서)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을 뜻한다. 악기 연주라든지 테니스나 수영 같은 운동, 프로그래밍, 사진, 모형 제작, 독서 같은 것들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이런 취미들의 공통적인 특성은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지만, 차츰차츰 그 취미를 즐기는 능력이 발달된다는 것이다(독서는 처음부터 잘 할 수 있는 취미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으나 독서를 계속 하면서 책을 읽는 능력 - 책을 읽을 때 그 속에서 더 많은 것들을 보게 되는 능력 - 이 발달하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취미생활과 동시에 나 자신이 발전한다고 보면 이해가 빠를지도 모르겠다.
반면에 수동적인 취미생활은 내가 별 신경을 쓰지 않고도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것쯤으로 생각하면 된다. 음악감상이나 영화감상, TV시청 혹은 라디오 청취, 운동경기 관람, 또 (무의미한) 웹서핑처럼 그냥 내가 가만히 앉아서 단지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취미생활이 수동적 취미생활이다. 혹자는 음악을 듣거나 영화를 보는 안목도 점점 높아지는 것이라 말할지 모르겠으나 그것은 그러한 점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생각(노력)을 해봤을 때 나타나는 현상이지, 단지 아무 생각없이 그것들을 듣고 보기만 한다면 별다른 '발전'이란 것은 없으며 있더라도 극히 미미하다는 것이 지금까지 내 경험상의 결론이다.
지금까지 위의 글을 읽는 동안 나름대로 눈치를 챈 사람도 있을 테지만 결국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취미 중에서도 보다 나은 취미가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보다 나은 취미는 (위의 정의에서) 능동적인 취미이다.
물론 취미생활의 종류에 절대적인 우열을 정할 수는 없다. 내 결론에 따르면 음악감상이나 영화감상 같은 것들은 보다 안 좋은 취미생활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의 가치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음악이나 영화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런 것들 없이도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우리의 삶은 너무도 밋밋해지고 말 것이다. 수동적 취미생활도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절대로 배제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다.
하지만 이런 수동적 취미생활의 가장 큰 단점은, "별로 남는게 없다"는 것이다. '취미생활에서 뭘 남겨서 뭐 하느냐, 그냥 현재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거다' 라고 생각하는 충실한 "carpe diem" 실천자들에게는 별 설득력이 없는 얘기일지는 모르겠으나, 그래도 "남는게 좋은 거다"라는 게 내 생각이다. 같은 여가시간을 보내면서 나 자신에게 무언가 발전이 생긴다면 그게 더 좋은 게 아닐까? 그만큼 나의 가치는 더 올라갈테니 말이다. (여기서 가치를 돈과 결부시키는 의미없는 사고는 생각지 않겠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사고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긴 하지만...) 취미생활을 하면서도 또다른 나의 발전을 이룬다면 이것이야 말로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일 것이다.
지금 나 자신의 여가시간을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내 취미생활이 너무 수동적인 것에 치우쳐져 있진 않은지. 그로인해 내 소중한 여가시간이 그냥 낭비되고 있진 않은지를.
시간과 노력을 적절히 섞으면, 그 시간이 지난 후에는 보다 나은 사람이 되는 법이다.
TV나 신문에서 박지성 이야기가 나오면 '나도 어렸을 때부터 축구나 할 걸..' 하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루마가 치는 피아노 선율을 들으며 황홀해 하는 여성들을 보면 '어렸을 때 배웠던 피아노를 계속 쳤더라면 나도 이러고 있진 않았을텐데..' 하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처럼, 내가 잘 못하는 것을 다른 이가 잘 하는 것을 보게 되면, 부러움과 동시에 나도 그것을 잘 하고 싶다는 욕구, 또 나는 왜 그것을 하지 못하나 하는 자괴심이 생긴다.
이 모든 것들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발생하는 현상인데, 산 속에 홀로 들어가서 도를 닦거나 영화 <캐스트 어웨이>에서 처럼 비행기 사고가 나서 무인도에서 지낼 수 밖에 없는 사람이 아닌 이상 다른 사람과 부대끼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고 따라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이러한 '고통'에 노출된 채로 살아가게 된다. 어릴 적부터 그렇게 나를 그렇게 열등감 속으로 몰아 넣었던 엄마 친구 아들로부터 지금 현재 나와 함께 공부를 하지만 나보다 잘 하는게 훨씬 많은 것 같은 학교 친구까지.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나보다 무언가를 잘 하는 사람을 너무도 많이 보아 왔으며, 그 때마다 부러움과 자괴감이 적절히 섞인 야릇한 기분을 느껴왔다. 그리고 이 기분 - 내가 그보다 부족하다는 느낌 - 은 그다지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 어떠한 한가지 재능에 관해서만 생각을 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일 뿐, 내가 그보다 못하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단지 '그 재능'에 관한 한 내가 그보다 못한 것을 뜻할 뿐이다. 다른 이의 재능을 보고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해 한탄부터 하기 전에 생각을 한 번 바꾸어 볼 필요가 있다. 그 사람이 그 재능을 키우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동안 내가 한 일들에 대하여. 그리고 그로 인해 내가 그보다 더 낫게 된 점이 무엇인지를.
박지성은 나보다 축구를 잘 하고, 이루마는 나보다 피아노를 잘 칠진 모르지만 그들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미적분을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 외에도 그들이 갖지 못한 나의 장점은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비록 그들과 내가 친하지 않기에 확실한 확인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 하는 그 무엇인가를 보고 그걸 부러워하고 자신을 책망부터 하기 전에 내가 가진 능력을 생각해보자.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흐뭇해지는 경우가 종종 있을 것이다. 허나,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그보다 못하다거나, 그의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것 또한 아무 것도 아니다. 그런 생각이 드는 즉시 나의 시간에 그 능력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덧붙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지금 얼른 익스플로러를 닫고 후회하지 않을 만한 내용으로 당신의 시간들을 채워라.
계속 인터넷 서핑만 하면서 다른 사람의 재능에 감탄사만을 연발하고 있는 당신! 그래, 바로 당신 말이다.
'99% 그럴 것 같다'도 '그렇다'는 아니며, '100% 그럴 것이다'도 '그렇다'는 아니다.
어떤 한 가지 생각할 일이 생기면 내 머리속은 바쁘게 움직인다. 황급히 시나리오를 쓰고 그에 따라 연기하는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 의해 한 편의 영화가 완성된다. 결과는 모두의 바람대로 항상 해피엔딩이면 좋겠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다.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는 것을 보고 나는 나름의 결론을 내린다.
"이건 아니야"
이 시나리오 자체는 잘못된 것이며, 그것은 처음의 생각이 잘못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이러이러한 결과가 나올 것 이므로...
내 머리속에서는 한바탕 폭풍이 지나가고 그에 따라 내 감정은 하늘과 땅을 왔다갔다하는 큰 변화를 겪었다. 나는 기쁨, 슬픔, 좌절을 맛보았고 그것은 나의 경험이며, 적어도 나에게는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나의 이러한 고행(?)에도 불구하고 실재(實在)하는 세계에서 변화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나는 그냥 의자에 앉아 있었을 뿐이며, 내 주변의 세계는 내가 방금 전의 생각을 거쳤건 거치지 않았건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은 채 그저 자신의 길만을 가고 있을 뿐이다. 내가 조금 전에 한 생각이 이 세상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그저 내 머리 속에 상영된 영화 한 편으로만 그 존재의 의미를 지키려 할 뿐이다.
나는 (혹은 우리는) 혼자만의 쓸데없는 생각으로 자신의 행동을 제약시키는 경우가 많다.
'이렇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하겠지? 그러면 안되는데...'
'아, 이건 해보나 마나일거야...'
'이건 가능성이 없는 얘기야. 당연히 안 돼.'
'암, 말도 안되지. 말도 안되고 말고...'
.....
확실하지도 않은 결론으로 자신의 자유에 손해를 볼 필요는 없다.
'그렇다'만 '그렇다'일 뿐이지, '그럴 것 같다'는 절대로 '그렇다'는 아니기 때문이다.
Carpe Diem..?
지금 나의 심리상태1) 는 내가 느끼는 이 세계 전체이다.
아니 '내가 느끼는' 이라는 말은 빼도 좋겠다.
지금 나의 심리상태는 이 세계 전체이다.
내가 태어나기 전2)에 세계는 없었고,
내가 죽고 나서도 세계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꿈 없는 수면을 취하고 있을 때도 세계는 없다.
나는 현재를 산다.
내가 느끼는 전부는 나의 현재 심리상태일 뿐이다.
그런데 종종, 아니 대개 나의 심리상태는 과거나 미래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과거로 인해 현재가 이루어졌고 현재로 인해 미래가 이루어지기에, 또 내가 그 사실을 알고 있기에
과거나 미래로부터 현재의 심리상태가 결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보다도 훨씬 중요한 것은,
'나는 현재를 산다'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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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심리상태는 종종 의식, 자아, 생각, 감정 등등의 용어로 표현되기도 한다.
나도 정확히 어떤 용어가 적절한지는 모르겠다. 단지 그 '느낌'만을 알고 있을 뿐이다.
당신도 물론 그걸 알고 있을테고.
2) 내가 태어나기 전이라 함은 나에게 어떠한 심리상태도 없었던 때를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확인하고 싶어한다.
내가 어떤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을 그 영화를 본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느꼈는지,
내가 어떤 책을 보고 느낀 것을 그 책을 본 다른 사람들도 그대로 느꼈는지.
다른 사람들과 내가 느낀게 같다면 내가 보편적인 시각 혹은 일반적인 능력을 가졌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내가 재미있게 본 영화를 다른 사람들이 재미없게 봤다면 자신의 영화 감상 능력에 대해 의심하고,
내가 재미없게 본 영화를 다른 사람들이 재미있게 봤을 때 역시 자신의 영화 감상 능력에 대해 의심한다.
'다른 사람이 느낀만큼 나도 느껴야 한다. 다른 사람이 재미없는 것은 나도 재미없어야 한다.'
는 강박이 나와 영화와의 순수한 만남을 방해한다.
끊임없이 나의 사고에 개입하고, 내 생각을 결정하려 한다.
그런 강박이 나를 다른 사람과 같게 만들려고 한다.
내가 내가 아니도록 강요한다.
하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내 친구가 그 영화를 보고 느낀 것, 영화 평론가가 그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이 아닌 나 자신이 그 영화를 보고 느낀 것이다.
다른 사람과 달라도 좋고 같아도 좋다. 내가 느끼면 그것은 나의 감상인 것이다.
감상에 우열따위는 없다.
그냥 단순한 우연의 수집일 뿐 아닌가?
물론 심리적인 영향으로 인해 징크스의 효과가 나타날 수도 있겠지만,
징크스 그 자체는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는 '미신'일 뿐이다.
헌데, 뉴스에서조차 징크스 징크스 하며 뭐 대단한 걸 발견한 것 마냥 떠들어 대니...
참으로 한심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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퐝 2006/07/24 1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요즘 내무실(이젠 생활관;;;)에서는 동기별로 내무실이 배정되서 청소를 할때 가위바위보로 청소를 결정해요.
(내무실마다 스타일이 다르죠..)
그런데 언제나 질것 같다고 생각하면 지게되고 결국 청소를 하게되요.
여기에 뭔가 있는것 같아요..
예측할수 없는 가위바위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다고.;;
내가 지게될 확률은 다른사람들하고 똑같은데도 불구하고 질것이라고 생각하면 지는 이유는 뭘까..
진다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앞으로 1분뒤에 넌 진다' 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뇌에서 예측한 것을 나는 질것 같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어쨋든 예감이 않좋은 날은 맨날져서 청소를 하죠..
잘나갈때는 2주연속 청소 안한적도 있는데..
우리는 수많은 거울들로 어떤 이를 본다. 행동, 말투, 표정, 쓰는 물건, 하는 공부, 그 사람의 홈페이지 혹은 블로그 같은 것들로. 하지만 그 중 그 사람을 완벽하게 나타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다. 그 모든 것을 본다 하더라도 그 사람의 단편적 파편 혹은 그것들의 집합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한 가지 사실만으로 그 혹은 그의 상태를 판단하는 것은 별 하나만 보고 우주의 진리를 알게 되었다고 떠드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나는 내 밖에 드러나는 것들만으로는 절대로 표현할 수 없는 존재다. 지금 이 블로그에 와서 이 글을 보고 있는 사람도 '절대로' 나에 대한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없다. 단지 여기 써진 글들로 내가 대략적으로 어떠한 사람일 것 같다는 추론만 할 수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 정확하지는 않다. 여기 올려진 글들은 내 진짜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 아닌 가면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블로그 혹은 홈페이지는 종종 다른이에게 자신을 알리기 위한, 혹은 자신을 표현하기 위한 도구라고 불리운다. 허나 많은 이들은 남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숨기기 위해,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또 다른 자신 - 진짜와는 다른 자신 - 을 알리기 위해 블로그나 홈페이지를 이용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그러한 사람 - 새로 만들어진 자신 - 이라고 믿고싶어 한다. 혹은 남이 그렇게 알아주기를 바란다.
거짓 투성이의 세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