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학 - 1건
- 2006/06/29 물리학, 수학, 공학, 그리고 방황 (2)
물리학, 수학, 공학, 그리고 방황
호모 사피엔스
2006/06/29 23:57
물리학자는 자연의 법칙, 그리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닐지언정) 혹 있을지도 모를 T.O.E.(Theory Of Everything ; 모든 것의 이론)를 추구한다. 그들에게는 '우주의 이해'라는 아주 거대하고 든든한 목적이 있다. 그런 목적이 있기에 그들은 상대성이론, 양자역학, 초끈이론 같은 골치아픈 분야들을 아주 즐겁게(?) 연구한다. 비록 '자연은 인간이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라는 증명되지 않은 기본전제를 바탕으로 하고 있긴 하지만, 그들의 연구자체는 우주에 대한 인류의 끈질긴 도전이다. 그리고 그러한 점에서 경이로움이 있다.
수학자들은 이성의 세계에서 진리를 추구한다. 그들은 수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수를 통해서 우주를 본다. 영화 '파이(π)'에서 처럼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은 숫자로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명제위에 서서 세상을 이해한다. 비록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에 의해서 수학이 진정한 진리가 아닐 수 있음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수학은 아직 세상의 많은 부분에서, 아니 거의 모든 부분에서 유효하다. 또, 굳이 세상의 이해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수학 그 자체에는 엄청난 아름다움이 있다(그것만을 추구하는 수학자도 많고, 또 그런 수학이 진정한 수학이라고 생각하는 수학자도 적지 않다). 공식에 아름다움이 있고, 증명과정에 아름다움이 있다. 수학자 존 내쉬의 일생을 다룬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제목을 'Beautiful Mind'라고 지은 것이 그냥 단순한 발상은 아니었으리라.
공학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수학과 물리학의 기초 토대 위에서 이 세상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 단지 '알아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알아낸 뒤 그걸 이용하는 것'에 까지 나아간다. 공학자들은 인류애를 지닌 사람들이다.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공학자들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인류에게 다양한 것들을 선물한다. 공학자들이 없었더라면 물리학자나 수학자의 업적들이 지금처럼 위대한 것으로는 평가받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공학을 공부한다. 공학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학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는 공학에 빠져들지 못했다. 철학에 관심을 갖다보니 본질적인 것에 더 큰 끌림을 느꼈던 때문일까? 단지 '이용하기 위해서' 수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나는 꽤나 불만스럽다(뭐든지 수단으로써 사용될 때는 매력도 재미도 떨어지는 법이다). 또 공학이 돈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타인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는 것이 공학이다. 여기에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러한 학문의 부자유성도 나와 공학의 사이를 벌려놓는 데 한 몫을 했다. 아직까지 내 전공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지금 나는 방황하고 있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이상과는 차이가 있는 현실 앞에서 나는 나침반을 바다속에 빠뜨려버린 배 위의 사람들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라는 책에 '망설임과 방황은 청춘의 특징이자 특권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나 또한 지금 청춘이고 그로 인해 망설임과 방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글쎄, 지금으로써는 현재의 방황이 내 미래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수학자들은 이성의 세계에서 진리를 추구한다. 그들은 수를 통해서 세상을 보고, 수를 통해서 우주를 본다. 영화 '파이(π)'에서 처럼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은 숫자로 표현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명제위에 서서 세상을 이해한다. 비록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에 의해서 수학이 진정한 진리가 아닐 수 있음이 밝혀지긴 했지만, 그 문제를 제쳐두고서라도 수학은 아직 세상의 많은 부분에서, 아니 거의 모든 부분에서 유효하다. 또, 굳이 세상의 이해가 목적이 아니더라도 수학 그 자체에는 엄청난 아름다움이 있다(그것만을 추구하는 수학자도 많고, 또 그런 수학이 진정한 수학이라고 생각하는 수학자도 적지 않다). 공식에 아름다움이 있고, 증명과정에 아름다움이 있다. 수학자 존 내쉬의 일생을 다룬 러셀 크로우 주연의 영화 제목을 'Beautiful Mind'라고 지은 것이 그냥 단순한 발상은 아니었으리라.
공학자들은 위에서 언급한 물리학자와 수학자들의 업적을 바탕으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한다. 수학과 물리학의 기초 토대 위에서 이 세상을 이해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무언가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낸다. 단지 '알아내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알아낸 뒤 그걸 이용하는 것'에 까지 나아간다. 공학자들은 인류애를 지닌 사람들이다. 불을 훔쳐다가 인간에게 가져다 준 프로메테우스처럼, 공학자들은 신이 아닌 인간으로서 인류에게 다양한 것들을 선물한다. 공학자들이 없었더라면 물리학자나 수학자의 업적들이 지금처럼 위대한 것으로는 평가받진 못했을 것이다.
나는 공학을 공부한다. 공학은 그 자체로 충분히 매력적인 학문이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까지는 공학에 빠져들지 못했다. 철학에 관심을 갖다보니 본질적인 것에 더 큰 끌림을 느꼈던 때문일까? 단지 '이용하기 위해서' 수학이나 물리학을 공부한다는 사실이 나는 꽤나 불만스럽다(뭐든지 수단으로써 사용될 때는 매력도 재미도 떨어지는 법이다). 또 공학이 돈과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도 마이너스로 작용한다.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다 하더라도 타인과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는 것이 공학이다. 여기에 순수학문과 응용학문의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이러한 학문의 부자유성도 나와 공학의 사이를 벌려놓는 데 한 몫을 했다. 아직까지 내 전공과 나는 어느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는 셈이다.
지금 나는 방황하고 있다. 내가 해야만 하는 것과 내가 하고 싶은 것 사이에서. 이상과는 차이가 있는 현실 앞에서 나는 나침반을 바다속에 빠뜨려버린 배 위의 사람들처럼 중심을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다.
다치바나 다카시의 <청춘표류>라는 책에 '망설임과 방황은 청춘의 특징이자 특권이다.' 라는 구절이 있다. 나 또한 지금 청춘이고 그로 인해 망설임과 방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겠지만. 글쎄, 지금으로써는 현재의 방황이 내 미래의 밑거름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전에 어떤 책에서 봤는데 '철학과' 나온 사람이 취직이 되는 이유 였어요. 그냥 생각하기로는 '철학과 나와서 사회에서 쓸 수 있는게 뭐지?' 이런생각을 하잖아요.. 교수되면 그게 잘되는거라고..
그런데 보통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철학과 나와도 취직이 잘되는 편이래요..(물론 그책이 우리나라 사람이 쓴게 아니라 우리나라는 실정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철학과를 나왔다면 최소한 다른사람들에 비해 생각을 많이 하는 사람이고 스스로 여러가지 생각하는 능력이 있다고' 판단하는 거죠..
솔찍히 취직을 해서 일을하는데 필요한게 대학교에서 배운 전공지식이 전부는 아니니까요..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든지 근본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은 "철학" 이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하는데.
아니,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도 공부해야 하는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