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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미국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에서 뇌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안토니오 다마지오라는 사람이 스피노자의 사상과 최근 급속한 발전을 이룬 뇌과학을 연관지어 쓴 책이다(원제는 <Looking for Spinoza : Joy, Sorrow, and the Feeling Brain>).

  나는 이 책을 읽기 한참 전부터 스피노자의 사상을 (정확히는 아닐지라도) 알고 있었고, 또 좋아했다. 최근에 뇌과학 관련 책들을 살펴보다가 이 책을 고른 이유 중 하나도 바로 내가 스피노자를 좋아한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이 책의 제목은 나에게 '대체 스피노자와 뇌과학이 어떠한 연관 관계가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불러일으켰고 그 궁금증은 결국 내가 인터넷 서점에서 이 책을 장바구니에 넣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저자는 정서(emotion)와 느낌(feeling)이라는 개념(혹은 현상)을 바탕으로 최근의 뇌과학 연구 성과들을 이용하여 정신과 육체는 구분되어 나누어지는 것이 아님을, 실제로 정신 또한 물리적인 현상임을 주장한다. 이는 17세기에 스피노자가 주장했던 '심신평행론'과 맥락을 같이하며 책의 곳곳에서 뇌과학적 사실과 스피노자 사상의 유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진화론적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한 보다 나은 선택을 하기 위하여 기쁨/슬픔의 정서가 발달하였고 이는 스피노자가 얘기하는 기쁨/슬픔과 다르지 않다. 곧, 생명을 존속시키기 위해서 인간은 기쁨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자연스러운(본성적인) 노력을 하게 되는데, 이 역시 스피노자의 코나투스라는 개념과 대응된다1). 이러한 이론들을 설명하기 위하여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문헌들을 통한 많은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고, 이는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주는 든든한 근거가 되고 있다.

  뇌과학이라는 안경을 통해서 만나는 스피노자는 익숙하면서도 새로웠다. 예전에 <에티카>를 읽으면서 애매하게 느끼고 넘어갔던 내용, 혹은 별다른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넘어갔던 내용 중 새롭게 이해되는 부분이 많았다. 뇌과학으로 인하여 스피노자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으며, 반대로 스피노자를 통해서 저자가 주장하는 내용에 대한 이해를 보다 확실히 할 수도 있었다(뇌과학이라는 안경은 스피노자의 사상을 보다 잘 볼 수 있게 특수 제작된 안경일 지도 모른다). 뇌과학이 무엇인지도 몰랐을 스피노자의 생각이 삼백여년 후에 가장 널리 믿어지게 되는 과학의 많은 부분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스피노자의 통찰력이 빛났고, 그러한 연관성을 구체적으로 찾아낸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통찰력도 빛났다.

  이 책을 마지막으로 뇌과학에 대한 독서는 당분간 접을 생각이다. 김종성 - 이 책의 감수자이기도 한 - 의 <춤추는 뇌>로 시작했던 뇌를 탐구하는 나의 짧은 여정은 여기서 끝을 맺는다. 뇌에 관해서 많은 책을 읽은 것도 아니고 아직 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 많지만, 한 가지 만은 분명히 얘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건 바로 앞으로의 철학은 뇌과학을 무시하고선 절대로 얘기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것.

  뇌과학은 기존의 철학에 있어서 베일에 싸여 있던 많은 부분을 벗겨주었고 지금도 벗겨나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마도 미래의 철학은 지금까지의 철학적 사유와 과학적 사유가 통합되는 그 어떤 모양새를 가지게 될 것이다. (과학이 철학에서 떨어져 나온지 몇 백년만에 다시 이들이 만난다니 참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과학적으로 렌즈를 깎던 스피노자가 철학자였던 것처럼 철학과 과학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다. 그리고 그 관계는 보다 풍부한 지적 유산을 낳을 것이다.


덧. 이 책은 스피노자의 기본적인 사상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있지 않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에티카>를 읽는 것 까지는 아니더라도 기본적인 스피노자 사상을 이해하고 있어야 책을 보다 쉽게, 그리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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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강영계 교수가 번역한 <에티카>(서광사)에는 이 코나투스(conatus)가 '노력'이라는 단어로 번역되어 있다.

2009/01/14 21:13 2009/01/14 2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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