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 - 1건
- 2006/05/03 수동적 정서에서 능동적 정서로
수동적 정서에서 능동적 정서로
호모 사피엔스
2006/05/03 10:58
정리
수동적인 정서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는 순간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증명 ...(생략)...
보충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정서가 더 잘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정서는 우리들의 힘 안에 있으며 또한 정신은 그만큼 더 정서의 작용을 적게 받는다.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수동적인 정서에 대한 관념을 형성했다.
"외로움"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겪고있는 수동적인 정서였다.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은 했었지만 확실한 관념이 형성되지 않았던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수동적인 정서에 사로잡혀서, 스피노자의 용어로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요 며칠동안 너무 외로웠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내가 겪던 수동적인 정서를 알아내면서(관념을 형성하면서) 이 외로움이라는 정서는 더이상 수동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 수동적인 정서가 아니므로 위 정리의 보충에서처럼 나는 그 정서의 작용을 더 적게 받게 되었다. '슬픔'은 더이상 없으리라.
덧. 위에서 내가 쓴 글은 위의 스피노자의 정리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 글은 아니다(스피노자의 올바른(?) 견해대로라면 나는 외로움이라는 정서에 대한 보다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했어야 한다). 하지만 심적으로 방황중이던 그 때의 나에게 <에티카>의 저 한 구절은 그 어느 때보다 내 가슴속 깊이 들어왔고, 나에게 커다란 힘을 주었다. 이런 것을 철학의 효용이라고 한다면, 위의 스피노자의 정리에 대한 나의 또다른 해석도 어떤 하나의 '철학'이리라 생각한다. (2006. 5. 26 오전에 덧붙임)
수동적인 정서는 우리가 그것에 대해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하는 순간 더 이상 수동적이지 않다.
증명 ...(생략)...
보충 그러므로 우리들에게 정서가 더 잘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정서는 우리들의 힘 안에 있으며 또한 정신은 그만큼 더 정서의 작용을 적게 받는다.
- 스피노자, <에티카> 제5부의 정리3
내가 지금까지 겪었던 수동적인 정서에 대한 관념을 형성했다.
"외로움"
바로 이것이 지금까지 내가 겪고있는 수동적인 정서였다. 어렴풋하게나마 짐작은 했었지만 확실한 관념이 형성되지 않았던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수동적인 정서에 사로잡혀서, 스피노자의 용어로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있었던 셈이다. 요 며칠동안 너무 외로웠던 것이다.
하지만 조금 전, 내가 겪던 수동적인 정서를 알아내면서(관념을 형성하면서) 이 외로움이라는 정서는 더이상 수동적인 것이 아니게 되었다. 수동적인 정서가 아니므로 위 정리의 보충에서처럼 나는 그 정서의 작용을 더 적게 받게 되었다. '슬픔'은 더이상 없으리라.
덧. 위에서 내가 쓴 글은 위의 스피노자의 정리에 대한 정확한 해석을 바탕으로 한 글은 아니다(스피노자의 올바른(?) 견해대로라면 나는 외로움이라는 정서에 대한 보다 명석 판명한 관념을 형성했어야 한다). 하지만 심적으로 방황중이던 그 때의 나에게 <에티카>의 저 한 구절은 그 어느 때보다 내 가슴속 깊이 들어왔고, 나에게 커다란 힘을 주었다. 이런 것을 철학의 효용이라고 한다면, 위의 스피노자의 정리에 대한 나의 또다른 해석도 어떤 하나의 '철학'이리라 생각한다. (2006. 5. 26 오전에 덧붙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