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건, 책이건, 음악이건, 찾아오기 적절한 때가 있는 법이다. 아무리 감동적인 영화라도, 아무리 대담하고 신선한 내용의 책이라도, 아무리 듣는 이의 온몸을 전율시킬만한 음악이라도 제 때에 찾아오지 않는다면 단순한 영상의 흐름, 글자의 나열, 음파의 연속을 벗어나지 못한다.


  ‘Dead Poets Society’. 군에서 근무를 하면서 한 번 본적이 있는, 따라서 이번에 본 것이 두 번째인, 나를 두 번 찾아온 영화다. 같은 화면, 같은 대사, 같은 플레이 타임. 모든 것이 같지만 군에서 본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와 이번에 본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는 같은 영화가 아니다.
  문학은 독자들의 머릿속에서 새로이 재구성되는 것이라고 한다. 독자들이 책을 읽으며 상상하는 이미지는 작가가 책을 쓰며 상상한 이미지와 같을 수 없다는 얘기다. 한 책에 천 명의 독자가 있다면, 그 책에 대한 이미지는 천 한 개가 있는 것이다(물론 새로 더해진 한 개는 작가의 이미지다). 모든 사람의 생각이 같을 수는 없는 거니까.
  영화도 예외가 아니다. 영화는 책과는 달리 직접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들이 한 가지 영화를 하나의 영상으로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람의 그 날 있었던 일, 당시의 심리상태, 영화를 보는 곳의 환경, 같이 보는 사람에 따라서 같은 영화 - 같은 영상과 소리의 나열들 - 도 수 만 가지의 영화로 변형된다. 동상이몽(同床異夢)이란 옛말도 괜히 생긴 말은 아닐 것이다. 영화도 보는 사람의 숫자만큼의 이미지를 가진다. 아니, 오히려 보는 사람의 숫자보다도 많은 이미지를 가진다. 나처럼 같은 영화를 두 번 이상 보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위에 예를 든 문학의 경우도 같은 이유로 천 한 개 이상의 이미지가 있을 것이다).
  군에서 이 영화를 보았을 때는 그다지 와 닿지 않았었다. 근무 중에 보았던 관계로 집중을 제대로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을 수도 있고, 주변의 어수선한 환경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물론 이 모든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수도 있다. 반면, 오늘은 이 영화를 조용한 가운데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컴퓨터로 보는 것의 장점을 살려서 볼륨을 조절해 가며, 제대로 못 본 부분을 다시 돌려가며, 뭔가 와닿는 부분에서는 잠시 플레이를 멈춰두고 생각에 잠기기도 하며, 그런 식으로 보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보다 내가 오늘 이 영화를 집중해서 볼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 영화가 나에게 딱 알맞은 때에 나를 찾아왔다는 것이다.
  토드 앤더슨.  키팅 선생님 이외의 등장인물들의 비중들이 대개 비슷비슷한 영화인지라 그다지 기억에 남는 캐릭터는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이 토드 앤더슨이라는 극중 인물이 키팅 선생님보다도 더 중요한 주인공이라고 생각되었다. 요즘 한창 유행하는 ‘혈액형별 성격’에서 A형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소심한 녀석. 매사에 자신이 없고 다른 이들 앞에 나서기를 두려워하는 그런 내성적인 학생. 마치 내 모습을 스스로 보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 정도로 내가 생각하는 나와 비슷했다. 그런 토드에게, 아니 반 학생들에게 키팅 선생님이 던지는 말 한마디.

  “Mr. Anderson thinks that everything inside of him is worthless and embarrassing."
  (“앤더슨 군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것을 가치가 없고 수치스럽게 생각하는군.”)

  마치 내 생각을 빤히 보고 있는 듯한 키팅 선생님의 한마디에 정신이 멍해지는 걸 느꼈다. 이어지는 키팅 선생님의 말.

  “Well, I think you're wrong, I think you have something inside of you. That is worth a great deal."
  ("나는 자네가 틀렸다고 생각하네. 자네의 내면에는 매우 가치 있는 것이 들어있어.“)

  결국 토드는 그 자리에서 너무도 멋진 시 한 구절을 지어낸다. 웃고 있는 반 친구들에게 한 방 먹이듯. 그리고 그 전까지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있었던 자기 자신에게도 한 방을 먹여 버리듯이.
  마치 내가 직접 선생님에게 가르침을 들은 것처럼 가슴이 뛰었다. 내 안에도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무언가가 있을 거라는 확신이 생겼다. 앞으로 내가 찾아나가야 할 그 무언가가...


  항상 그렇듯, 어떤 영화나 다른 것을 접하다 보면 하고 싶은 것이 생겨나게 마련이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그런 것이 생겼다. 바로 ‘시를 짓는 것’. 군시절부터 막연하게나마 품어온 생각 혹은 꿈이었는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 생각이 자리잡고 있던 내 머리 속의 조그마한 영역이 더 넓어져버린 느낌이다. 나중에 나의 연인에게 그녀만을 위한 시를 한 수 지어 읊어줄 수 있다면.
  영화를 보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개운해 진 느낌이다. 이런 마음이 오래 지속되긴 힘들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한 번씩 마음에 변화를 줄 수 있다는 것. 이런 게 바로 영화를 찾아서 보는 이유 아닐까?

2006/04/21 11:14 2006/04/21 11:14
Leave a comment